한 사람의 삶의 기록의 정리 마지막... 일상(日常)

이제는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좀 전에 구석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금속 박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많은 메모들과 작은 수첩, 그리고 사진들이 나오더군요.
할아버지의 젊으셨을 적 사진을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독립운동하셨을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대전국립묘지에 계십니다.
제 증조 할머니라고 어머니께서 알려주시네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이렇게 사진으로 뵙는게 처음입니다.
1934년... 그러니까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찍은 사진도 있으니 참 오래된 사진입니다.
중국 대련(다롄)인 걸로 봐서는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이 같이 찍으신 사진 같습니다.

좌측 사진은 이후로 십 몇년은 지난 사진으로 보입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봐서...
할머니는 아버지 옆에 서 계시네요.
할머니께서 형제분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다들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아계셨는데...

이제는 이 사진에 계신 분들은 모두 이 세상에는 안 계시네요.
젊으셨을 적의 할머니 사진들입니다.
아버지가 청년일 때의 사진도 있고 꼬마 때의 사진도 있군요.
이렇게 젊으셨을 때의 모습은 이제서야 저도 처음 보게 됩니다만
어쩌면 이렇게도 지금 제 누나의 모습과 비슷한지...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이보다 훨씬 젊으셨을 때의 사진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좀 전의 사진은 제가 알아봤습니다만 이 사진은 누군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방금 전에 보시고 할머니라고 알려주시네요.

아마도 20년대 후반내지는 3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이 때의 할머니도 지금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가지고 계셨었겠죠.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서 고모님께서 당시 어머니인 할머니께 보낸 편지도 있더군요.
두장의 편지였는데 첫번째 장은 없어지고 두번째 장만 보관하고 계셨나봅니다.
조그만 쪽지에 남기신 일기입니다.
12월 15일에 쓰셨는데 연도는 알 수 없지만 공장 다니던 시절의 것으로 보입니다.

글씨가 눈에 잘 안 들어와 겨우 읽어봤는데 대략 내용이 이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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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열 한시간 작업을 하고
작업비를 받아서 고기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본 즉 수사 주임(주: 할아버지)도 왔는데
월내(?)들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화가 나셔서 수사 주임한테 며느리 험담을 하여서
나는 코 빈(?) 거 보다도 더 부(?)러워서 방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서 떨면서
팔자한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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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시집살이를 힘들게 해 오셨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런 시집살이 중에 생긴 마음고생을 메모하신 것이겠지요.

제 어머니의 시어머니로서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셨지만
당신도 저 시절에는 저렇게 시집살이를 해 왔구나 하는 걸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 글을 모르는 분도 많았지만 할머니는 나름 한글도 깨우치셔서 잘 써 오셨습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메모를 하고 일기를 남기시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저렇게 시계를 사고
시계약을 샀던 것까지 기록해 놓으시고 그걸 보관하셨습니다.

이 사진에는 빠져있지만 제 결혼날짜도 메모해 놓고 가지고 계시더군요.
- 조카를 안고 계신... 십여년 전의 모습 -

할머니...

이제는 정말로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제가 할머니께 잘못했던 거 다 용서해 주시고

하늘에서 당신의 손자가 그리고 당신의 증손자, 증손녀가 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덧글

  • 미르누리 2010/12/10 10:10 # 답글

    좋은 곳에 가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실듯 합니다 힘내시구요
  • 토디 2010/12/10 11:37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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